영화 비평
건물이 삼키고, 시대가 배설하는 것들 — They Will Kill You
「They Will Kill You」 (They Will Kill You) · 조 벌링거 (Joe Berlinger) · 2026
1.
1996년, 아칸소 주 웨스트 멤피스의 한 법정에서 조 벌링거 감독이 카메라를 든 채 흐느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 명의 십대가 사탄 숭배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던 순간이었다. 그가 그 후 18년간 ‘파라다이스 로스트’ 삼부작을 완성하며 그들의 무죄를 입증해낸 것은 영화계에서 이미 전설처럼 회자되는 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장르 영화 ‘They Will Kill You’를 들고 나왔다. 진실을 파헤치는 자가 허구 속 공포를 만드는 아이러니.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아이러니가 실은 필연이었음을 알게 된다.
2.
맨해튼의 어느 전전(戰前) 건축물. 영화는 이 건물의 현관 로비에서 시작해, 결국 그 건물의 지하에서 끝난다. 매들린 페치가 연기하는 엘레나는 ‘긱 이코노미’의 희생자다. 생존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 하는, 그래서 이상한 구인광고에도 응할 수밖에 없는 청년. 촬영감독 체코 바레세는 건물의 복도를 마치 무한히 이어지는 것처럼 찍는다. 벽은 숨을 쉬고, 엘리베이터는 무덤처럼 좁다. 스테파니아 첼라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바랜 영화(榮華)의 흔적이 썩은 것과 뒤섞이는 감각을 정밀하게 구현한다. 로만 폴란스키의 ‘로즈마리의 아기’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벌링거 역시 그걸 숨기지 않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1968년의 공포가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였다면, 2020년대의 공포는 ‘나는 어디에 살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3.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린 샤이의 얼굴이었다. 건물의 비공식 여가장(女家長) 앨드리치 부인 역. 그녀의 미소에는 자비와 약탈이 동시에 서려 있다. 손녀를 대하는 듯한 온기 뒤에 포식자의 계산이 번뜩인다. ‘버라이어티’의 오웬 글라이버먼이 “예측 불가한 양가성(兩價性)의 연기”라 쓴 것은 정확했다. 건물의 다른 세입자들 역시 각자 비밀을 품고 있으며, 그 집합적 위협은 단일한 빌런보다 더 불길하다. 문제는 3막이다. 두 시간 가까이 유지해온 암시적 공포가, 후드를 쓴 인물들의 의식 장면에서 갑자기 문자 그대로의 것이 된다. 사탄 숭배 컬트의 도상(圖像)이 너무 익숙하게 나열되는 순간, 영화는 거의 코미디 직전까지 간다.
4.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내게 묘한 감상을 남긴다. 벌링거는 부동산이라는, 어쩌면 가장 일상적인 악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유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보이지 않는 노동, 건물이 착취의 역사를 담고 있는 방식, 절박한 자가 안락한 자에게 소비당하는 구조. 그것은 곧 뉴욕이라는 도시의 초상이기도 하다. 도큐멘터리를 찍던 자가 장르 영화로 건너온 까닭이 여기 있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때로는 허구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얼리히는 “불완전하지만 진정한 사회적 상상력의 작품”이라고 썼는데, 나는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마무리된 공포는 곧 치유된 공포다. 하지만 뉴욕의 아파트는, 서울의 아파트는, 오늘도 새로운 희생자를 삼킨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공포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실패가 곧 성공인 공포 영화. ‘They Will Kill You’는 바로 그런 역설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