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더 많은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 Bad Bunny

「DeBÍ TiRAR MáS FOToS」 · Bad Bunny · Rimas Entertainment · 2025 · 스트리밍 ↗

DeBÍ TiRAR MáS FOToS - Bad Bunny 음반 표지
Bad Bunny — 「DeBÍ TiRAR MáS FOToS」 (2025) 표지 © iTunes / 레이블

지난주에 오래된 휴대폰을 정리하다가 10년 전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었다. 지금은 죄다 ‘힙한’ 술집으로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허름한 선술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사진 속 간판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때 더 많이 찍어둘걸. ‘DeBÍ TiRAR MáS FOToS’—배드 버니의 새 앨범 제목이 정확히 그 말이다. “더 많은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이 거인은 여섯 번째 앨범에서 뜻밖의 방향을 택했다. 그간 그가 보여줬던 건 팝의 최대치였다. 빌보드를 점령하고, 월드투어를 돌고, 어떤 장르든 자기 식으로 뒤집는 글로벌 슈퍼스타. 그런 사람이 갑자기 고향의 플레나 리듬과 쿠아트로 선율을 끌어안고 돌아왔다.

《피치포크》의 이사벨리아 에레라는 이 앨범을 두고 “절제와 질감의 마스터클래스”라고 썼다. 동의한다. 수록곡 ‘VeLDá’와 ‘PERFuMiTo NUEVO’에서 플레나 드럼과 쿠아트로 어레인지는 복고적 페이스티시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배드 버니의 보컬 역시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 전작 ‘Un Verano Sin Ti’에서 보여줬던 폭발적인 플로우 대신 대화하듯 속삭인다.

하지만 이 앨범의 진짜 무게는 음악 너머에 있다. 배드 버니가 말하고 싶은 건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문화적 침식이다. 익숙했던 풍경이 어느 날 낯설어지는 그 쓰라림이다. ‘TURiSTA’에서 그가 옛 연인을 노래할 때, 동시에 그는 지역 공동체를 밀어낸 관광객들을 애도(哀悼)하고 있다. 정치와 사적 감정이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될 수가 없다. 고향의 상실은 언제나 둘 다이기 때문이다.

앨범의 중심축은 ‘LO QUE LE PASÓ A HAWAii’다. 하와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하와이 원주민의 문화가 어떻게 침식되었는지를 푸에르토리코의 현재와 겹쳐놓는다. 대담한 정치적 선언이되 멜로디는 거부할 수 없이 중독적이다. 이 조합이야말로 배드 버니의 무기다. 달콤한 설탕에 씁쓸한 약을 숨기는 게 아니라, 쓴맛 자체를 감칠맛으로 바꿔버린다.

나는 을지로를 떠올린다. 서울역 주변을. 익선동을. 한국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 오래된 골목이 ‘핫플’로 주목받는 순간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은 밀려난다. 카페가 들어서고 렌트가 치솟고 간판이 바뀌고, 어느새 그 동네는 그 동네가 아니게 된다. 배드 버니의 푸에르토리코와 우리의 도시들이 다르지 않다. 관광과 투자의 논리가 삶의 터전을 집어삼키는 메커니즘은 전 지구적으로 동일하다.

19트랙은 분명 길다. 모든 곡이 필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방대함 속에서도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BAILE INoLVIDABLE’의 살사 그루브는 엑토르 라보에의 황금기를 소환하면서도 명백히 동시대적이다. ‘DtMF’의 미니멀한 비트는 그의 스토리텔링이 전면에 나서도록 물러선다. 배드 버니는 히트곡 제조기를 넘어 앨범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증명한다.

그래서 결국 이 앨범은 역설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으려 할수록 그것이 이미 사라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더 많은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는 후회는 사진으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자각이기도 하다. 배드 버니는 고향을 잃어가면서 비로소 고향을 노래할 언어를 얻었다. 상실이 그에게 가장 강력한 창작의 동력이 되었다. 실패가 곧 성공이었던 셈이다—다만 그 성공이 마냥 기쁘지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