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금고의 비밀번호, 그리고 빌려간 책의 행방 — 책과 열쇠의 계절

「책과 열쇠의 계절」 (本と鍵の季節 (Hon to Kagi no Kisetsu / The Season of Books and Keys)) · 요네자와 호노부 / 米澤穂信 (Yonezawa Honobu) · 옮긴이 김선영 · 엘릭시르 · 2018

책과 열쇠의 계절 표지
「책과 열쇠의 계절」 (2018)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1.

미스터리의 본령은 시체인가. 장르의 역사가 그렇게 말해왔다.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이후 추리소설은 살해된 육체를 전제로 발전했고, 독자는 범인의 정체를 추론하는 쾌감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 전제를 조용히 거부한다. 일본 비평계가 ‘일상의 수수께끼(日常の謎)‘라 부르는 영역, 시체 없이도 성립하는 퍼즐의 문법을 그는 일관되게 탐색해왔다. 『책과 열쇠의 계절』은 그 탐색의 또 다른 결실이다.

2.

여섯 편의 연작 단편이 고등학교 도서위원회를 무대로 펼쳐진다. 화자 호리카와와 친구 마쓰쿠라는 방과 후 서가를 정리하다가 소소한 의뢰를 떠맡는다. 고인이 남긴 금고의 조합 번호, 특정 도서의 대출 패턴에 숨은 의도, 어느 학생의 가정사를 둘러싼 의문. 살인은 없고 경찰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각각의 수수께끼는 가족의 비밀, 작은 배신(背信), 어른 세계의 타협을 향해 열린다. 표면의 퍼즐을 풀면 심층의 윤리가 드러나는 이중 구조, 이것이 요네자와 미스터리의 핵심 장치다. 《커커스 리뷰》는 이 작품이 “퍼즐의 기계학보다 일상적 선택의 도덕적 질감에 관심을 둔다”고 평했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3.

도서관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은유(隱喩)의 자장(磁場)으로 기능한다. 책은 단서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내면을 읽어내는 행위 자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호리카와와 마쓰쿠라는 문장을 독해하듯 사람을 독해한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과 관계를 해석하는 능력이 포개지는 순간, 청춘소설과 미스터리는 하나의 문법을 공유하게 된다. 두 소년은 아직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지 않았으나, 의뢰를 해결하며 그 세계가 유년의 이상보다 훨씬 타협적임을 깨닫는다. 마지막 단편은 예기치 않은 어둠을 도입하며, 친밀한 우정조차 해독 불가능한 영역을 품고 있음을 암시한다. 편안한 관계의 안쪽에 미지(未知)가 남는다. 이 지점에서 ‘미스터리’는 장르적 의미에서 실존적 의미로 이행한다.

4.

요네자와의 문체는 절제되어 있고, 감정을 명시하지 않는다. 독자가 행간을 채우도록 여백을 남기는 방식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를 원하는 이에게는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이야말로 작가의 의도다. 시체가 없기에 무게가 없는 게 아니라, 시체가 없기에 드러나는 무게가 있다. 작은 거짓말이 관계를 재편하고, 사소한 발견이 자기 이해를 뒤흔든다. 『책과 열쇠의 계절』은 그렇게 역설을 증명한다. 가장 작은 수수께끼가 가장 큰 진실을 비춘다는 것, 그리고 풀리지 않는 것이 남을 때 비로소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