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아래, 광대가 웃는다
「테러파이어 3」 (Terrifier 3) · 데미안 리온 (Damien Leone) · 2024
거실 크리스마스트리 전구가 깜빡인다. 선물 상자 리본은 식칼에 잘리고, 난로 위 양말엔 붉은 자국이 번진다. 흑백 분장의 광대 아트가 문틈에 비스듬히 서서 고개를 갸웃한다. 데미안 리온의 ‘테러파이어 3’는 이 장면으로 시작해 명절의 의례를 살육의 무대로 바꾼다.
이 시리즈가 스트리밍 시대에 기어코 슬래셔 아이콘을 만들어낸 것은 실물 특수효과에 대한 집착 덕분이다. 살갗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질감은 디지털 피가 대체할 수 없는 촉각적 불쾌를 남긴다.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장시간의 난도질은 공포와 유희를 한 몸에 담아 경탄과 메스꺼움을 동시에 부른다. 액체질소를 이용한 살해 장면은 이 프랜차이즈의 대표 장면으로 남을 만하다.
그러나 극단을 경신하려는 욕심은 구조를 잠식한다. 다음 장면이 더 잔인하리라는 기대만 남고 긴장은 소멸한다. 충격이 쌓여 권태로 바뀌는 순간, 과잉 살육은 지루한 반복이 된다. 시에나에게 부여한 천사와 악마의 환영은 종교적 공포를 암시하지만 서사로 엮이지 못한 채 잔혹 장면의 쉼표에 그친다. 여성의 몸이 반복적으로 징벌되는 시선은 이 영화의 쾌락과 혐오가 어디에 기대는지 드러낸다.
이 영화의 도발은 사회가 이미 소비해버린 폭력 이미지를 얼마나 더 자극적으로 포장해야 하는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금지된 것을 갈망하는 관객은 스스로 선택해 극장을 찾고, 영화는 그 기대에 정직하게 응답한다. 집에 머물라는 경고 문구가 이 작품의 가장 정확한 수용법이다.
당신이 이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기준은 취향이 아니라 위장과 인내심이다. 그 시험을 통과했을 때만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광대의 웃음이 하나의 미학적 사건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