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공장에서 태어난 꿈, 혹은 꿈을 닮은 공장 — Bon Jovi

「Slippery When Wet」 · Bon Jovi · Mercury Records · 1986 · 스트리밍 ↗

Slippery When Wet - Bon Jovi 음반 표지
Bon Jovi — 「Slippery When Wet」 (1986) 표지 © iTunes /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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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뉴저지 출신의 청년 존 본 조비는 세 번째 앨범을 위해 밴쿠버로 날아갔다. 프로듀서 브루스 페어베언과 엔지니어 밥 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녹음에 앞서 이들이 요구한 것은 기이했다. “곡을 다시 써라. 전부.” 밴드가 가져온 곡 대부분이 폐기되었고, 브로드웨이 히트곡 제조기로 이름 높던 데스몬드 차일드가 공동 작곡자로 투입되었다. 존은 훗날 이 시기를 ‘군대 훈련소’에 비유했다. 스튜디오에서 그는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를 따라 조립하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앨범 커버 역시 원래는 젖은 여성의 몸을 담은 도발적 이미지였으나, 유통사의 요청으로 무난한 비닐 봉투 사진으로 교체되었다. 모든 것이 계산되고, 수정되고, 포장되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Slippery When We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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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E》의 스티븐 웰스는 이 앨범을 두고 “모든 위험 요소가 외과적으로 제거된 록”이라 썼다. 신랄한 표현이지만 정확하다. ‘Livin’ on a Prayer’는 부두 노동자 토미와 식당 종업원 지나의 고단한 삶을 노래하지만, 그 표면은 크롬 도금처럼 번들거린다. 노동자의 땀 냄새는 없고, 스타디움을 가득 채울 주먹 쥔 손만이 상상된다. 이것은 블루칼라의 노래가 아니라 블루칼라를 향한 노래, 더 정확히는 블루칼라를 소비하는 노래였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뉴저지 공장 지대의 먼지를 들이마시며 써 내려간 것들을, 본 조비는 에어컨이 나오는 스튜디오에서 복사(複寫)했다. 원본과 복사본의 간극(間隙)은 선명했다. 그러나 그 복사본이 원본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사실, 이것이 이 앨범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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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은 로널드 레이건이 “아침이 다시 밝아오는 미국”을 외치던 해였다. 냉전의 긴장이 여전했지만, 월스트리트는 활황이었고, MTV는 거실마다 침투해 들어갔다. 대중은 고통을 직시하기보다 고통을 응원가로 바꿔 부르길 원했다. “우린 반쯤 왔어, 기도하며 살아가는 거야”―이 후렴구는 구조 조정에 내몰린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에게도, 교외의 중산층 십 대에게도 똑같이 먹혔다. 고통의 구체성은 삭제되고, 극복의 제스처만 남았다. 《Slippery When Wet》이 미국에서만 1,200만 장 이상 팔린 것은 음악적 완성도 때문만이 아니다. 이 앨범은 레이건 시대가 필요로 한 정서적 진통제였다. 아프지 않다고 믿게 만드는 약, 일어서라고 외치면서 왜 쓰러졌는지는 묻지 않는 약. 어쩌면 대중음악의 가장 정직한 역할이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사회가 보고 싶어 하는 거울이 되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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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앨범을 비난할 수 없다. 아니,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말해야 옳다. 한때 나 역시 ‘You Give Love a Bad Name’의 도입부 기타 리프에 가슴이 뛰었던 청년이었으니까. 데스몬드 차일드가 설계하고 브루스 페어베언이 조립한 이 노래들은, 듣는 이의 의지와 무관하게 뇌에 박힌다. 그것이 악마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장인 정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Slippery When Wet》이 록의 종언(終焉)과 부활을 동시에 선언했다는 점이다. 거친 것, 날것, 반항의 몸짓이던 록 음악은 이 앨범을 기점으로 완전히 산업화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수천만 명이 이 음악을 자기 삶의 사운드트랙으로 삼았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가장 계산된 음악이 가장 많은 사람의 진심을 건드렸다는 역설. 공장에서 찍어낸 꿈이 진짜 꿈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는 이 불편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대중음악이란 결국 누구의 것인가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