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영국 음악지 《NME》는 단언했다. “콜드플레이는 쿨하지 않다(Coldplay are not cool). 한 번도 쿨했던 적이 없다.” 그리고 곧바로 이 앨범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쿨하지 않은 밴드의 음반이 어째서 그토록 “우습도록 부정할 수 없이 좋은가(ridiculously, unashamedly good)“를 해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쓰는 이 편지는 그 해명에서 시작하려 한다.
당신의 밴드가 『A Rush of Blood to the Head』를 발표한 2002년 8월, 세계는 불안의 한복판에 있었다. 9·11 테러 1주년이 다가오고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에는 폭격이 계속되었으며, 조지 W. 부시는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쌓아 올리는 중이었다. 냉전 종식 후 잠시 도래한 듯했던 ‘역사의 종언’은 물거품(物去品)이 되었다. 그 시절, ‘The Scientist’의 피아노가 울려 퍼졌다. “아무도 쉬울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Nobody said it was easy).” 당신은 이 한 문장으로 수백만 명의 무방비 상태를 관통했다.
묻겠다. 그것은 위로였는가, 마취였는가?
《Rolling Stone》은 이 앨범을 두고 “영혼이 있는 스타디움 록”이라 했다. 찬사처럼 들리지만, 나는 그 표현의 이면을 읽는다. 스타디움은 대중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키는 공간이다. 수만 명이 동시에 손을 흔들고, 같은 후렴을 따라 부르고,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Clocks’의 피아노 리프가 울리는 순간, 관객은 개인이기를 멈춘다. 그것이 해방인가, 동원(動員)인가? 감정의 공유는 언제 연대가 되고, 언제 통제가 되는가?
당신들은 쿨하지 않았다. 그 점이 중요하다. 2000년대 초반의 쿨함이란 대개 냉소였다. 라디오헤드는 알고리즘에 잠식당한 인간 조건을 노래했고, 스트록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뉴욕의 밤을 연주했다. 그 사이에서 당신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In My Place’의 “나는 길을 잃었어, 나는 길을 잃었어(I was lost, I was lost)“라는 반복은 민망할 정도로 솔직했다. 《Pitchfork》의 평대로, 당신들의 가사는 때때로 “모호함을 깊이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모호함이 열린 공간이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상실을 거기에 대입(代入)할 수 있었다.
이것이 위로의 정치학이다. 구체적인 고통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고통을 포괄하는 것. 특정한 적을 지목하지 않음으로써 누구의 적도 되지 않는 것. 2002년의 불안한 세계에서 당신들의 음악은 안전지대였다. 전쟁도, 테러도, 경제 위기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비겁함인가, 지혜인가? 아니면 단지 록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인가?
‘Politik’의 첫 소절에서 당신은 외쳤다. “우리에게 진짜 약속을 해줘(Give me real, don’t give me fake).” 정치라는 제목을 달고도 정치적 내용이 없는 이 노래를 두고 비평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듣는다. 진짜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정치였다. 가짜 명분으로 전쟁을 준비하던 그 시절, 록밴드가 진정성을 외치는 것은 그 나름의 저항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그저 자기위안이었을 수도 있다.
22년이 지났다. 당신들은 여전히 스타디움을 채운다. 그리고 세계는 여전히 불안하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자에서,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The Scientist’는 아직도 유효한가? “아무도 쉬울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라는 위로는 여전히 필요한가, 아니면 이제는 다른 문장이 필요한가?
독자 여러분께 묻는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위로받은 노래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 위로는 당신을 어디로 이끌었는가. 잠시 눈을 감게 했는가, 아니면 눈을 뜨게 했는가. 콜드플레이의 음악이 여전히 울리는 이유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