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스파이스 걸스는 사기꾼이다 — Spice Girls

「Spice」 · Spice Girls · Virgin Records · 1996 · 스트리밍 ↗

Spice - Spice Girls 음반 표지
Spice Girls — 「Spice」 (1996) 표지 © iTunes / 레이블

스파이스 걸스는 사기꾼이다. 음악을 팔겠다고 나섰으나 정작 판 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1996년, 오아시스와 블러가 기타를 들고 영국의 정통성을 놓고 다투던 그 한복판에 이 다섯 명의 여성들은 등장했다. 그들에게 기타는 없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고뇌도, 음악적 혁신에 대한 야심도 없었다. 대신 그들은 슬로건을 들고 왔다. ‘Girl Power’. 그리고 이 두 단어짜리 구호가 음악 산업 전체를 뒤흔들었다.

《Spice》는 앨범이라기보다 선언문(宣言文)에 가깝다. ‘Wannabe’의 첫 소절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것이 음악적 진지함과는 전혀 다른 게임임이 분명해진다. 지가지가(zigga-zig-ah)라는 알 수 없는 의성어, 놀이터에서 주고받는 것 같은 코러스, 멜로디라기보다 주문에 가까운 반복. 《NME》의 스티븐 웰스는 이 앨범을 두고 “거의 경악스러울 정도로 효율적”이라고 썼다. 정확한 진단이다. 이 앨범은 효율의 산물이다. 예술이 아니라 공학이다.

제작진 맷 로우와 리처드 스타나드가 구축한 사운드는 삼십 년 팝 역사의 정밀한 편집본이다. 스톡 에이튼 워터맨의 하이에너지 프로덕션, 90년대 초 미국 R&B의 세련됨, 심지어 아바의 발라드적 웅장함까지. 이 모든 것이 계산된 비율로 혼합되어 있다. ‘Say You’ll Be There’는 매시브 어택 흉내를 내면서도 학교 무도회에서 틀어도 무방할 정도로 순화되어 있고, ‘2 Become 1’은 머라이어 캐리의 앨범에 실려도 어색하지 않을 발라드다. 독창성은 없다. 그러나 종합(綜合)의 기술에서만큼은 흠잡을 곳이 없다.

다섯 명의 보컬은 개별적으로 보면 제한된 악기들이다. 아무도 휘트니 휴스턴처럼 노래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의 총합을 넘어선다. 열정이 화음으로 벽을 이룬다. 그리고 이 열정은 음악이 아니라 인격으로 포장된다. 스포티, 베이비, 포시, 스케어리, 진저. 각각의 별명은 각각의 원형을 대변한다. 소비자는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을 골라 동일시할 수 있다. 이것은 음악이 아니라 마케팅이다. 아이돌 산업의 청사진이 이미 여기에 있다.

‘걸 파워’라는 슬로건이 이념으로서 얼마나 깊은지는 의문(疑問)의 여지가 있다. 페미니즘이라기엔 너무 가볍고, 단순한 구호라기엔 너무 광범위하게 퍼졌다. 그러나 이 다섯 명의 여성이 팝 문화의 중심을 점령하면서 여성 간의 우정과 자기결정권을 노래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혁명적이었는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효과적이었는가? 압도적으로 그렇다.

브릿팝의 남성들이 비틀즈와 킹크스 레코드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 스파이스 걸스는 전혀 다른 방향을 택했다. 그들은 과거를 숭배하지 않았다. 과거를 약탈했다. 그리고 그 전리품으로 현재를 지배했다. 비평가들의 연말 결산에 이름을 올릴 앨범은 아니다. 그들도 그것을 노린 적이 없다. 오아시스-블러 담론과는 완전히 다른 평행우주에 존재하며, 거기에 만족한다.

스파이스 걸스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기꾼이다. 《Spice》는 팝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팔 수 있는지를 증명한 앨범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90년대 중반 이후 팝 산업이 가려는 방향의 가장 솔직한 예고편이었다.

영화 《프로듀서스》의 대사가 떠오른다. “만약 이길 수 없다면, 그들을 현혹시켜라.” 스파이스 걸스는 현혹시켰다. 그리고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