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평

건국 200년, 그가 쓴 백과사전 — Stevie Wonder

「Songs in the Key of Life」 · Stevie Wonder · Tamla (Motown) · 1976 · 스트리밍 ↗

Songs in the Key of Life - Stevie Wonder 음반 표지
Stevie Wonder —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 표지 © iTunes /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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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미국 건국 200주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작품은 백인의 것이 아니었다. 스티비 원더의 『Songs in the Key of Life』는 발매 첫 주에 130만 장이 팔렸고, 더블 앨범에 EP까지 딸린 이 방대한 세트는 ‘팝 역사상 가장 많은 예약 주문’을 기록했다. 《롤링 스톤》의 스티븐 홀든은 이 앨범을 “교향곡,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경험의 음악적 백과사전”이라 불렀다. 백과사전이라는 비유는 정확하다. 이 앨범은 흑인 대중음악의 모든 문법—소울, 펑크, 재즈, 가스펠, 팝—을 한 권에 집대성(集大成)한 뒤, 각각의 문법을 미답의 영역으로 밀어붙인다.

18개월의 침묵 끝에 돌아온 원더는 당시 음악 산업이 요구하던 것—히트 싱글, 소화 가능한 포맷, 라디오 친화적 러닝타임—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21곡, 총 105분. 딸 아이샤의 탄생을 기념하는 ‘Isn’t She Lovely’는 7분이 넘는데, 그는 라디오용 편집본 제작을 거절했다. 상업적 자살 행위처럼 보였던 이 결정은 역설적으로 상업적 승리가 되었다. 원더는 증명했다. 타협 없는 창작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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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의 특이성은 기쁨과 고발이 같은 호흡 안에 공존한다는 데 있다. ‘I Wish’는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펑키한 리듬 위에 회고하는데, 거기엔 향수만큼이나 아이러니가 깔려 있다. 흑인 소년이 “크리스마스에 뭘 받을지 기대했던” 기억은, 그 소년이 자라 백악관에 초대받는 아티스트가 된 뒤에야 비로소 말해질 수 있는 종류의 기억이다.

반면 ‘Village Ghetto Land’는 바로크풍 하프시코드 음색 위에 도시 빈곤을 묘사한다. 우아한 선율과 잔혹한 가사 사이의 괴리(乖離)는 의도된 것이다. 굶주린 아이들과 마약상들이 사는 동네를 ‘마을’이라 부르는 제목 자체가 이미 비틀린 농담이다. ‘Pastime Paradise’는 영적 공허를 거의 종교적인 현악 편곡으로 감싸는데, 이 곡은 21년 뒤 쿨리오의 ‘Gangsta’s Paradise’로 샘플링되어 또 다른 세대의 빈민가를 노래하게 된다. 원더의 1976년은 1995년으로, 그리고 지금으로 이어진다.

‘Black Man’은 펑크 리듬 위에 역사 수업을 올린다. 심장 수술을 처음 성공시킨 사람, 혈액은행을 만든 사람, 신호등을 발명한 사람—모두 흑인이라고 원더는 노래한다. 그러나 이 곡은 단순한 자긍심의 노래가 아니다. 가사는 모든 인종의 기여를 나열하며, “이 세상은 모두의 것”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분리가 아닌 통합, 복수가 아닌 연대. 1976년에 이것을 말하는 건 급진적인 동시에 위험하게 순진한 것이었다.

원더는 이 앨범에서 거의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했다. 키보드, 드럼, 하모니카, 신시사이저. 그러나 앨범은 독백처럼 들리지 않는다. 허비 행콕과 조지 벤슨이 참여했고, 미니 리퍼튼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원더는 자신의 비전 안에 타인을 초대할 줄 알았다. 독재가 아닌 지휘. 그것이 이 앨범이 ‘백과사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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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묻는다. 지금 이런 앨범이 가능한가. 스트리밍 시대에 105분짜리 더블 앨범을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가. 플레이리스트는 앨범을 해체했고, 알고리즘은 청자를 분류했다. ‘너와 내가 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경험 자체가 희귀해진 시대에, 원더가 꿈꾼 ‘모두의 세상’은 유토피아적 레트로로만 남았는가.

2024년 미국 대선에서 흑인 투표율은 전 대선 대비 하락했다. 분노도 희망도 표로 연결되지 않는 시대. 원더의 1976년에 흑인 유권자들은 카터를 백악관에 보냈고, 원더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생일을 연방 공휴일로 만드는 캠페인의 선봉에 섰다. 음악과 정치가 같은 몸이던 시절. 지금 우리에게 그런 노래가 있는가.

『Songs in the Key of Life』는 결국 질문이다. 대중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히트 차트의 공식을 따르는 자의 것인가, 아니면 공식을 무시하고도 차트를 점령하는 자의 것인가. 원더는 후자였고, 그래서 그의 앨범은 오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불편하다. 우리가 아직 그런 음악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