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버튼을 누르자, 창밖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방 안으로 퍼진다. 천둥은 없고, 바람 소리도 끼어들지 않는다. 멜로디와 가사, 박자라는 단서는 처음부터 지워져 있다. 오직 유리창에 부서지는 물방울의 결만이 트랙마다 차곡차곡 쌓인다. 귀를 기울여도 화음이 피어나지 않고,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조차 섞이지 않는다. 2020년 자체 발매된 Silent Chills의 ‘Rain Sounds For Sleep’은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빗소리 한 가지로만 방 안을 채운다.
음악을 평론하는 도구가 거의 모두 무용해지는 순간이다. 주파수는 고역을 눌러 놓았고, 스테레오 상은 좁게 고정된다. 갑작스러운 천둥이나 볼륨의 돌출은 없다. 잠자리에서 깨지 않도록 모든 자극을 평평하게 다듬은, 일종의 청각 기반 시설이다. 감상용으로는 단조롭지만, 수면 보조라는 효용(效用)에서는 그 일관성이 미덕으로 기능한다. 이 무심한 반복은 의외로 정교해서, 낮은 대역은 부드럽게 눌려 있고, 고역은 날카로워지지 않는다. 이어폰이든 스피커든 빗소리는 귀를 찌르지 않는다. 일부러 몸을 낮춘 셈이다.
앰비언트 음악의 계보에는 브라이언 이노의 화가적 세부와 어브 타이벨의 환경(環境) 음향이 있다. Silent Chills는 거기서 예술의 잔재를 걷어낸다. 미국의 한 음악 평론가가 말했듯, 이 음반은 ‘예술품이라기보다 스트리밍 시대의 방 톤’에 가깝다. 화음을 더하지 않고, 코드의 긴장 따위도 짓지 않는다. 이 무표정함은 실수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수면·집중 플레이리스트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계산된 태도다. 스트리밍 차트에서 ‘빗소리’는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됐고, 이 음반은 그 장르의 빈틈을 메운다. 소비자들은 더 적은 자극을 원하고, 알고리즘은 그것을 정확히 낸다.
2020년 팬데믹의 불안과 화면 노출은 수면 리듬을 갉아먹었다. 이 음반은 그 불면의 구호품처럼 등장했다. 어떤 이는 이것을 음악이 아니라 음향 설계(音響設計)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현대 청취가 서사 대신 분위기 관리에 기울어 왔다는 사실을 이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도 드물다. 록 절대주의자에게는 불편한 풍경이겠지만, 과잉 자극의 시대에 ‘잠잘 수 있는 소리’는 대접받는 상품이 된다. 곡의 기승전결이 사라진 자리에, 잠이 자리 잡는다. 굳이 음악의 경계 밖으로 밀어낼 필요 없이, 이 음반은 산업이 듣는 이를 기능으로 바꾸는 장면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이 음반은 대단한 야심을 품지 않는다. 다만 제목이 약속한 한 가지를 성실히 이행할 뿐이다. ‘Rain Sounds For Sleep’. 그 낮은 목표의 정확성이, 어떤 치밀한 모음집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