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통역할 수 없는 것들 — 1938 타이완 여행기

「1938 타이완 여행기」 (一九三八年的臺灣旅行 (1938 Taiwan Travel)) · 양솽쯔 / 楊双子 · 옮긴이 김이삭 · 마티스블루 · 2020

1938 타이완 여행기 표지
「1938 타이완 여행기」 (2020)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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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란 무엇인가. 낯선 곳을 다녀왔다는 증명이 아니다. 오히려 보는 자의 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구조의 폭로다. 1938년, 일본인 여행작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타이완에 온다. 섬의 음식을 기록하라는 제국의 위촉을 받고서. 그녀 옆에는 통역 왕첸허가 있다. 현지인. 대만어, 일본어, 객가어를 넘나드는 여자. 둘이 함께 걷고 먹고 말한다. 영국 《가디언》의 마야 자글리가 이 소설을 두고 ‘본래 의미의 노스탤지어’라 했다.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고향이 낯설어져버린 자의 고통(苦痛). 식민지는 그런 곳이었다. 자기 땅에 서서 이방인이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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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솽쯔는 음식을 잘 쓴다. 밥상 위의 것들이 문화의 저장소이자 제국의 전리품이기도 하다는 것을. 치즈코는 맛을 기록하지만, 그 맛이 어디서 왔는지는 첸허만 안다. 둘 사이에 번역(飜譯)이 오간다. 그러나 끝내 옮겨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는 이 ‘번역 불가능성’이 소설의 철학적 중심이라 했다. 맞는 말이다. 제국의 언어로는 담을 수 없는 것, 통역의 침묵 속에만 남는 것. 두 여자의 우정은 거기서 자란다. 불평등한 구조 위에서, 그럼에도, 진심으로. 사랑이라 불러도 좋을 온기가 이 소설에 있다. 그 온기는 체제를 부정하지 못하지만 체제만으로 설명되지도 않는다. 소설은 판단을 유보한다. 단죄도, 면죄도 없다. 다만 1938년이 1938년이었음을 보여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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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한국에 온 2024년, 동아시아는 여전히 과거를 두고 싸운다. 누구의 기억이 옳은가. 누구의 아픔이 더 아픈가. 『1938 타이완 여행기』는 그 논쟁에 어떤 답도 내놓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를 묻는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이, 결국 무엇을 통역하지 못했는지 고백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아직 얼마나 많은 침묵 앞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