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범인을 먼저 알려주는 추리소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 안녕 신

「안녕 신」 (さよなら神様 (Sayonara Kamisama / Goodbye God)) · 마야 유타카 (麻耶雄嵩, Maya Yutaka) · 옮긴이 문승준 · 내친구의서재 · 2014

안녕 신 표지
「안녕 신」 (2014)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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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동네 헌책방에서 추리소설을 사면 마지막 장부터 펼치는 버릇이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먼저 확인한 뒤 처음부터 읽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결말을 모르는 채 300쪽을 헤매는 건 참을 수 없는 불안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범인을 알고 읽으니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작가가 어디서 복선을 깔았는지, 탐정의 추리가 어디서 삐걱거리는지 눈에 보였다. 나는 독자가 아니라 공범이 된 기분이었다.

마야 유타카의 ‘안녕 신’은 그 버릇을 정식으로 허락해주는 소설이다. 아니, 허락이 아니라 강제다. 이 연작 단편집에는 ‘카미사마(神様)‘라 불리는 초등학생이 등장해 매 이야기 첫머리에 범인을 선언한다. 그리고 그 선언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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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범인을 처음부터 알려주면 추리소설이 성립하는가. 미스터리의 핵심이 ‘누가 했는가(whodunit)‘라면, 답을 먼저 공개한 추리소설은 존재론적(存在論的) 모순 아닌가.

마야 유타카는 이 질문에 교활하게 응수한다. 범인은 알려줬으니 이제 ‘어떻게’와 ‘왜’를 맞혀보라는 것이다. 문제는 증거가 그 결론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는 A가 범인이라 했는데, 모든 정황은 B를 가리킨다. 독자는 신탁(神託)과 논리 사이에서 분열한다. 믿음과 이성의 충돌이 추리소설 형식으로 펼쳐지는 셈이다.

커커스 리뷰는 이 구조를 ‘역전된 역전 미스터리(inverted inverted mystery)‘라 불렀다. 도치(倒置)를 한 번 더 뒤집으니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마야는 그 자리가 텅 비어 있음을 보여준다. 범인을 알면 사건이 해결되리라는 독자의 믿음, 그 믿음 자체가 허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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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편의 단편은 같은 소도시를 배경으로, 같은 인물들이 반복 등장한다. 그러나 장소와 인물은 철저히 기능적이다. 심리적 깊이도, 정서적 유대도 없다. 마야의 문장은 냉정하고 건조하며,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길 거부한다. 이 점이 어떤 독자에게는 메마르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건조함이 오히려 솔직하다고 느꼈다. 추리소설은 원래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즐기는 장르 아닌가. 범인이 잡히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척하지만, 우리가 진짜 쾌감을 느끼는 순간은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찰나다. 마야는 그 찰나마저 박탈한다. 답을 알아도 과정이 납득되지 않으니 쾌감은 유보되고, 독자는 책을 덮을 수 없다.

마지막 여섯 번째 이야기는 그 모든 유보를 한꺼번에 청산한다. 앞선 다섯 편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드는 반전이 기다린다. 어떤 독자는 속았다고 분노할 것이고, 어떤 독자는 경탄할 것이다. 나는 후자였지만, 전자의 심정도 이해한다. 마야는 독자와 페어플레이를 약속하면서 그 약속의 정의 자체를 물어뜯는 작가다. 혼카쿠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이란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정도로 전복적(顚覆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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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며 요즘 뉴스를 떠올렸다. 누군가 먼저 “이 사람이 범인이다”라고 선언하면, 증거는 그다음에 맞춰진다. 소셜미디어의 신탁은 마야의 ‘카미사마’만큼이나 절대적이고, 이성은 그 앞에서 무력하다. 다만 소설 속 신은 적어도 틀린 적이 없다. 현실의 신들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