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비평

체호프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 체호프 단편선

「체호프 단편선」 (Selected Short Stories of Anton Chekhov) ·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 Anton Pavlovich Chekhov) · 옮긴이 박현섭 · 민음사 · 1886

체호프 단편선 표지
「체호프 단편선」 (1886) 표지 © Open Library / 출판사

1

체호프의 단편은 실패한 소설이다. 플롯이 없다. 반전이 없다. 결말도 없다.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에서 불륜은 시작되지만 끝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사랑인지 권태인지 분간 못 한 채 이야기 밖으로 사라진다. 독자는 남겨진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2

그는 설교하지 않았다. 관찰했다. 승진을 꿈꾸는 하급 관리, 무력감에 짓눌린 시골 의사, 사랑 없는 결혼에 질식하는 지방의 아내들. 그의 시선은 외과의(外科醫)처럼 정밀하되, 냉혹하지 않다. 진단하되 처방하지 않는다. 「구스베리」에서 한 남자는 평생의 꿈이던 농장을 얻고 행복해한다. 그러나 그 행복은 둔감의 다른 이름이다. 화자는 분노하지만, 체호프는 판결하지 않는다. 그 침묵 속에 독자가 들어선다.

3

희극과 비극은 대립항이 아니다. 「키스」에서 수줍은 장교는 우연히 받은 입맞춤을 평생 되새긴다. 우스꽝스럽고, 슬프고, 인간적이다. 체호프는 인물의 모순(矛盾)을 허락한다. 사람은 일관되지 않으니까. 그의 문장은 짧고, 세부는 정확하며, 말은 언제나 도중에 끊긴다. 첫 단락과 마지막 단락을 지우라던 그의 조언처럼, 그의 이야기는 중간에서 시작해 중간에서 멈춘다.

4

플롯을 포기한 자만이 삶의 질감을 얻는다. 반전을 거부한 자만이 진짜 반전을 만든다. 체호프의 단편이 백 년이 지나도 낡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완성된 이야기’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실패가 곧 혁명이었다.